2014년 7월 4일 금요일

"나만을 위해 사는 건 작게 사는 것, 나와 너를 위해 사는 건 크게 사는 것" -대해 스님


 


서울 도곡동 조계종 국제선원에서 선원장 대해(大海·55)  스님을 14일 만났다. 그의 안목은 각별하다. 불법(佛法)의 정수리를 관통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 80편에 달하는 단편영화 연출과 대안 교과서 제작, 불교경전의 한글화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삶의 이치, 우주의 이치를 풀어내는 대해 스님은 불교계가 주목하는 선지식(善知識)이기도 하다. 그에게 ‘세월호’를 물었다.

- 세월호 참사, 어떻게 보나

 “세월호만 세월호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세월호가 있었고, 이 순간에도 세월호가 있다. 종류와 크기가 다를 뿐이다.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이 경험한 비극이다.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됐고, 그래서 파헤쳐졌을 뿐이다. 우리 주위를 봐라. 그동안 묻혀 있던 크고 작은 세월호가 얼마나 많은가.”

 -크고 작은 세월호라니.

  이 물음에 대해 스님은 “오늘 아침에 뭘 타고 출근했나?”라고 되물었다. “그게 세월호다. 내가 타는 버스와 지하철, 승용차가 세월호다. 우리는 매일 그 세월호를 타고 있다. 그러니 이번 참사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깊이 절감해야 한다.”

 - 그토록 많은 세월호가 있었는데 왜 지금껏 바꾸지 못했나.

 “마음이 없었던 거다. 진짜로 이걸 해결하려는 마음이 그동안 없었던 거다. 그게 있었다면 이미 바뀌었다. 이번 참사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지 모른다. 참 답답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모르더라. 내가 출퇴근 때 타는 게 다름 아닌 세월호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세월호란 말인가.

 “당신이 바로 그 세월호의 선장이다. 출근길 풍경을 자세히 살펴보라. 불법 유턴하고, 신호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막 가로지르지 않나. 그러다 침몰하는 거다. 세월호는 멀리 있지 않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라. 나는 어떤 선장인가.”

 대해 스님은 영화를 제작한다.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한 방편이다. 해외에서 열린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만 38회나 된다. “지난번에 영화를 찍는데 카메라를 든 사람이 전봇대에 올라가 촬영을 하려고 하더라. ‘사람이 다치면 안 된다’고 말렸더니 ‘괜찮다. 사고가 나면 우리가 책임지면 된다’고 대답하더라. 사람들의 관심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익을 보느냐’였다.” 그게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세월호도 그런가.

 “똑같다. 승객들 생명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챙겼다. 해운사는 과적하고, 공무원은 허락하고, 선장은 도망쳤다. 다들 남의 생명을 무시한다. 자기 이익만 바라본다.”

 -왜 그런가.

 “한국 사회에 ‘평형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균형을 잡고 방향을 정하는 평형수가 없어서 그렇다.”

 -우리 사회의 평형수라면.

 “고려시대에는 불교적 가치관이 있었다. 조선은 유교적 가치관이 있었다. 그게 시대마다 평형수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탈국가·탈민족시대다. 가치관이 사라졌다. 주위를 보라.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달리나. 다들 돈을 위해 달린다. 그러니 자기 이익만 챙긴다. 우리가 그런 배를 타고 있다. 평형수 없는 세월호 말이다.”

 -왜 평형수가 없나. 왜 가치관이 없나.

 “문제의 첫 단추는 교육이다. 우리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신도 중 한 엄마가 와서 하소연을 하더라. 늘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데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힘들다고 했다. 제가 물었다.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 대답을 못 하더라. 막연히 특목고 가야 하니까, 막연히 1등 해야 하니까. 엄마도 이유를 모르고, 아이도 이유를 모르더라.”

 - 그 이유를 알면.

 “그럼 달라진다. 내가 왜 이걸 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컴퓨터를 새로 사면 사용설명서를 익히지 않나. 그래야 제대로 쓴다. 삶도 그렇다. 제대로 쓰려면 설명서를 익혀야 한다. 그게 공부다. 공부는 삶에 필요한 설명서를 익히는 기간이다. 그걸 익혀야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주고받으며 게임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그걸 이해하면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필요성을 느끼고 목적성을 갖는다.”

  대해 스님은 그게 바로 ‘존재 이유’라고 했다. 세월호에는 그게 없었다고 했다. “선장이 평소에 그걸 물었다면 그렇게 도망쳤겠나. 내가 왜 선장이 됐는가. 내가 왜 해경이 됐는가. 내가 왜 공무원이 됐는가.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방향성이 생기고 가치관이 생긴다. 그래야 자기 목숨이 걸린 위기 상황에서도 행동이 나간다. 그런 가치관이 자기 삶의 평형수가 되고. 우리 사회의 평형수가 되는 거다.”

 -왜 다들 자신만 챙기나.

 “사람들은 자기가 먹을 채소에는 농약을 안 친다. 그걸 1이라고 하자. 그럼 나머지 99는 어떡하나. 자기도 농약 친 걸 사 먹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먹을 것도, 남이 먹을 것도 농약을 안 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럼 모든 사람이 무농약 채소를 100만큼 먹게 된다. 그게 세상의 존재 원리다. 정말 나를 지키고 싶은가. 그럼 남을 지켜줘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거다. 왜 그렇겠나. 나와 전체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불이(不二)’다. 그걸 알아야 나도 살리고 너도 살린다. 우리가 더 크게 사는 법이다.”

 -국민도, 대통령도 ‘국가 개조’를 말한다.

 “소는 이미 잃었다. 그래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뜯어고치려면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방향성이 있을 때만 올바른 개조가 가능하다. 그게 가치관이다. 그 가치관이 우리 사회의 평형수가 돼야 한다.” 대해 스님은 20년 전부터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삶의 평형수를 찾 는 교육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아픔이 크다.

 “자식이 죽었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크겠나. 누군가 옆에서 힘이 나게 도와줄 수는 있을 거다. 치유는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건 결국 사라진다. 그걸 깊이 이해하고,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자식 잃은 슬픔이 삶의 에너지로 치환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이 결국 세월호다.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내 삶의 평형수가 뭔가. 또 나의 삶은 우리 사회의 평형수로 작동하고 있는가.”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해(大海) 스님=1959년생. 불교 조계종 국제선원 선원장. 약 80편의 단편영화를 제작 한 비구니 스님이다. 작품 중 일부가 현재 BTN불교TV에서 ‘영화 불국토’로 방영되고 있다.
중앙일보 5/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