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7일 토요일

세월호와 카트리나 참사

[시론] 세월호를 보며 카트리나를 되돌아본다

"아무리 잘 짜인 재난대응 매뉴얼도 국민의 성숙한 안전의식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할 뿐"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다. 이번 사건이 ‘총체적 부실이 낳은 인재’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비통함을 감출 수 없다. 다시는 이 땅에서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이가 재난대응시스템의 재정비를 꼽는다. 하지만 하드웨어만 뜯어고친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의식 변화와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 한 ‘안전 한국’은 기대하기 어렵다. 2005년 8월 미국도 금세기 최악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를 겪었다. 당시 필자는 현지 총영사로서 재난 현장의 한가운데서 한인 동포들에 대한 대피 및 구호 활동을 펴며 미국 정부가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맥이었다. 시속 250㎞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제방이 붕괴하면서 아름다운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는 도시 전체의 80%가 물에 잠겼다. 1836명이 숨지고 실종자를 합하면 250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낳은 대참사였다. 그럼에도 재난 지역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동포는 다친 사람 하나 없었다. 현지 공관을 통한 신속한 초동 대처가 낳은 기적이었다.    
뉴올리언스는 70%가 해수면보다 낮은 사발 모양이다. 어느 곳으로든 물이 들어오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게 돼 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예방 조치에 소홀했고 재난 대응도 태만했다. 그런 점에서 뉴올리언스 참사는 인재였다. 당시 현지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구호 경험을 담은 『위기의 72시간』이란 책에 기술했듯이 72시간, 즉 3일은 재난에 대응하는 최후의 시간이다. 그 안에 국가 지도자와 재해 관련 기관들의 신속한 정책 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의미다.
 뉴올리언스 참사는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2001년 보고서를 통해 장차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참사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뉴욕시 테러 공격,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등 세 가지를 열거하고, 그중 뉴올리언스 허리케인을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으로 방재예산이 삭감돼 허리케인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 불행히도 예언은 적중했다. 그해에 가공할 9·11 테러 공격이 벌어지고 4년 뒤엔 뉴올리언스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책임론이 고조됐다. 정가에서는 청문회가 그치지 않았다. 재해에 대한 마스터플랜의 부족에서부터 뉴올리언스 제방보수 예산 삭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였다. 재해 관련 기관들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했다. 관료들의 미적거림은 늑장 지원의 원인이 됐다. 여기에 관료주의적인 경쟁의식이 재앙을 더욱 부채질했다.
 재난을 ‘참사’로 키운 것은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재 탓이 아니었다. 위기에 빠진 국민보다 자기 자리만 지키려는 영혼 없는 정치인, 국토안보부와 연방재난관리청, 지방정부, 국방부 관리 등 모두의 잘못이었다. 미국은 9·11 사태가 발생하자 테러 및 재난 관리 업무를 통합해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재난대응시스템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재난대응시스템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분초를 다투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초동 조치다. 갖가지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의 전문성과 유연성도 필요하다. 국가안전처를 만들고 시스템을 정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절실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의 변화다. 그 어떤 획기적인 안전기구라도 무거운 책임감과 뜨거운 사명감이 깃들지 못하면 또 하나의 옥상옥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잘 짜인 재난대응 매뉴얼도 국민의 성숙한 안전의식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세월호 사건이 ‘참사’로만 머물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변화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동석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중앙일보 2014.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