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인연에 의해 서로 돕는 관계이며 나와 연관되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다"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 온다. 이때쯤이면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처음으로 외치셨다는 이 거룩한 가르침이 간혹 절대자적 성향 또는 아만(我慢)과 아상(我相)을 상징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모든 것이 인연(因緣)에 의해 나타난 것일 뿐, 나(我)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라는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참나’(眞我)인 ‘불성’(佛性)에 관한 이해가 선행될 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부처님께서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스스로 부처의 성품(佛性)을 갖추고 있음을 찬탄하신 말씀이다. 당신의 위대함이 아니라 세상 모든 생명의 위대함을 선언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오신 참뜻이 바로 이처럼 모든 중생이 부처의 본성을 가진 평등한 존재임을 선언하신 데 있다.
석가모니 당시의 고대 인도 사회는 ‘카스트’(caste)라는 엄격한 신분 계급 제도의 지배하에 있었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에 부여되는 카스트에 종속되어 운명적으로 정해진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탄생게는 카스트라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부정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자는 인류 최초의 역사적인 인권 선언이기도 하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이러한 탄생게의 교훈을 통해 ‘모든 생명을 내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라’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되지만, 최근에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사고로 올해는 더욱더 부처님의 탄생게가 가슴을 울린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이 국가적 재난으로 우리 국민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함께 슬퍼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도리를 가르치셨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우리 모두가 인연(因緣)에 의해 서로 돕는 관계이며 나와 연관되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한 몸, 한 생명으로, 서로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상생(相生)의 관계인 것이다.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사고로 모두가 비통함에 잠겨 있는 이때, 우리는 연기(緣起)와 상생의 가르침을 펼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크신 뜻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하겠다. 이번 사고로 안타깝게 희생된 분들과 그 유가족들을 위해 우리는 다 같이 기도하고 서로 위로하며 이 고통의 시간을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
지거 스님 /동화사 부주지. 청도 용천사 주지
[매일신문 2014. 05.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