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왼쪽)와 네안데르탈인 가상도. |
그런데 지난 1월 30일 세계 과학계의 양대 산맥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기존 이론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와 또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내용인즉, 현생인류의 몸에 약 3만년 전에 멸종되기 시작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것.
공동 연구를 통해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한 미국 워싱턴대학의 벤저민 베르놋 박사와 조슈아 아케이 박사는 유럽인과 동아시아인 600명의 DNA(게놈)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몸에 1~3%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는 걸 밝혀냈다. ‘네이처’에 논문을 낸 미국 하버드 의대의 연구자인 스리람 산카라라만 박사 또한 게놈 분석 결과를 토대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머리카락과 피부를 생성하는 유전자와 결핵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똑같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실 연구를 이끈 이들 연구팀은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가설을 입증하려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허를 찔린 셈이다.
‘인류’의 시초는 구석기시대(230만~240만년)의 화석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이어 호모 하빌리스(손을 쓰는 사람)가 등장했고, 호모 에렉투스(서 있는 사람)와 네안데르탈인(네안데르 계곡에서 유골이 발견됐다)이 그 다음으로 출현했다. 그 뒤 ‘지혜로운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기원설’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나타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4만~5만년 전 아프리카의 호모 사피엔스가 아시아로 진출했고 3만~4만년 전에 유럽으로 향했으며, 그 뒤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렀다는 것이 기존 학설이다. 이렇게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종과 경쟁을 했고 그 결과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이 ‘아프리카 기원설’의 핵심이다.
이 학설은 미국 버클리대학의 레베카 칸 교수팀의 연구에 의해 1987년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교수팀은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해 호모 사피엔스가 이주하면서 동 시대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 결국 멸종시켰을 것으로 추측했다. 고인류학에서는 약 30년 전부터 미토콘드리아나 성염색체의 특정 유전자(이를 ‘마커 유전자’라고 함)가 지역별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추적해 종의 이동이나 확산 경로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냈다는 주장에 반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중의 하나가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중동에서 함께 살았다는 것. 네안데르탈인은 약 50만년 전에 태어나 서유럽부터 시베리아 남부까지 퍼져 살았다. 그러다가 3만년 전부터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해 2만4000년 전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멸종했다.
네안데르탈인의 생존 기간이 호모 사피엔스와 겹친다는 점은 고인류학자들에게 수수께끼였다. 이 기간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과 아시아 대륙 전체에 퍼진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를테면 짝짓기를 통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생인류에까지 전달됐다는 것 등이다.
2010년 5월 7일자 ‘사이언스’에는 네안데르탈인 게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진화인류학부장의 ‘현생인류의 게놈에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연구 내용이 실렸다. 네안데르탈인 40억개 유전자지도를 밝힌 결과, 현대인의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1∼4% 섞여 있다는 것.
또한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 일부(0.4g)를 갈아 추출한 DNA에서 염기서열을 해독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DNA가 99.7% 동일했다. 이는 현생인류와 침팬지의 DNA가 같은 비율(98.8%)보다 높은 수치이다.
이번의 산카라라만 교수와 베르놋 박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는 이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이다. 그럼에도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유럽인과 아시아인에게만 나타났고 아프리카인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스반테 페보 부장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혼혈’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현생인류가 수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퍼졌을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만나 혼혈이 일어났다는 시나리오다. 산카라라만 교수 또한 네안데르탈인의 피부와 머리카락 색깔 등의 특정 유전자가 짝짓기를 통해 현생인류로 유전됐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인류가 같은 지역에서 함께 생활했고 자손을 낳아 현생인류로 진화했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은 눈두덩이 툭 튀어나오고 이마가 낮고 몸집은 건장한, 한마디로 원시적인 모습의 인류다. 그들은 동굴 속에서 생활했지만 벽화를 남기지 않았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두개골이 둥글고 체구는 호리호리하며 튀어나온 이마에 평평한 얼굴과 좁은 눈썹을 가진, 네안데르탈인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인류다. 이렇게 다른 종이 현대인의 조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두개골 모양이 다르고 벽화를 남기지 않는 등 생활 방식도 달랐지만, 짝짓기를 했다는 주장은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혼혈 덕분에 네안데르탈인의 두꺼운 피부와 억센 모발의 유전자가 제공돼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한 현생인류가 추운 날씨에 잘 견딜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시기와 장소가 호모 사피엔스와 겹친다고 해서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과거에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짝짓기를 하더라도 종이 달라 번식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종이 다르면 그 사이에서 난 새끼는 대개 생식력이 없다.
둘 사이의 만남이 어떤 식이었는지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진출 경로, 연대 등이 더 정확히 연구된 뒤에야 알 수 있다. 만약 이번 연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서로 다른 종이라는 의견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 인류의 기원과 계보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주간조선. 2014.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