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비트' 교육감 후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 이듬해 대형사고를 쳤다. 그것도 미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려 악재 중의 악재로 꼽혔다. 다름아닌 영어가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
당시 유엔 금고는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황이었다. 미국이 분담금을 제때 지급을 안한 때문. "미국은 데드비트 기부자(deadbeat donor)다." 약속만 하고 실제 기부는 미루는 나라라는 뜻이다. "미국을 '데드비트'에 비유한다는 게 말이 되나?" 정치권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총장 규탄에 한목소리를 냈다.
반 총장의 영어는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데드비트'의 유래를 정확히 몰라 해프닝이 빚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냥 평범한 단어를 골라 썼으면 탈 없이 넘어갈 것을 공연히 어려운 말을 써 논란에 불을 지폈다.
'데드비트'는 게으름뱅이라는 뜻도 있으나 미국선 자녀의 양육비를 내지 않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슬랭이다. 그래서 '데드비트'는 참 나쁜 아버지의 아이콘처럼 쓰인다. 반 총장이 악담을 퍼부은 꼴이 됐으니 오바마 대통령도 버럭 화를 낼 수밖에.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반 총장은 "말 실수였다"며 머리를 숙이고는 곧바로 사과를 했다. 사실, 미국은 유엔 전체예산의 25%에 달하는 분담금을 내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돈을 조금만 늦게 줘도 유엔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진다. 반 총장의 발언은 이 같은 시점에서 나온 것이다.
'데드비트'의 출처는 남북전쟁. 직역하면 '숨진(dead) 책임감(beat)'이라고 할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를 회피하는 병사를 비아냥대는 말이었다. 기록을 보면 목숨이 아까워 일부러 손가락을 잘라 전선에서 이탈하는 '데드비트'도 적지 않았다. 이런 군인들이 워낙 많았던지 '데드비트'가 관용구로 자리잡았다.
군대에선 그러나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이후 미국사회에 이혼가정이 크게 늘어나면서 '데드비트'가 자녀부양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거나 양육비를 떼어먹는 아버지로 쓰이게 됐다.
엊그제 뉴욕에 살고 있는 20대 한인여성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아버지를 고발해 정치판을 한바탕 뒤흔들어 놨다. 그동안 양육비는 한 푼도 주지 않은 '데드비트 아빠', 자신과 동생의 교육을 방치한 아버지가 어떻게 수백만명이나 되는 남의 자식을 가르칠 수 있느냐며 통렬하게 꾸짖는 내용이다.
당초 교육감 당선이 유력시 되던 그 아버지는 '앵그리맘'이 똘똘 뭉쳐 등을 돌리는 바람에 쓴 잔을 마셨다. 반성은커녕 되레 상대 후보의 정치공작이라고 맞받아친 게 역효과를 낳았던 모양이다.
그 아버지는 이른바 KS마크(경기고-서울대)에 고시 3관왕(사법, 행정, 외무고시) 출신. 법조문만 열심히 외워 수석 합격의 영광을 누리고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딸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도덕적 품성만큼은 함량미달이었던 것 같다.
자녀의 눈높이에선 '데드비트'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앱선트 대디(absent daddy)', 곧 '부재 중인 아빠'다. 한창 성장기에 롤모델이 되어줘야 할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으면 한이 맺히게 마련. 한인 여성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엔 '앱선트 대디'에 대한 원망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다음 주말(6월 15일)은 '아버지의 날'이다. 과연 나는 어떤 아버지인지, 혹 '앱선트 대디'는 아닌지 반성을 해보자.
박용필 LA중앙일보 논설고문 (0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