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는 맨입으로 안 돼. 안전 위한 강력한 제도와 규제를 국민 각자가 감수해야 -
반 가까이 줄었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천항에서 연안여객선을 타는 승객들 말입니다. “한동안 배를 타지 말아야지. 그 정도로 위험한 줄 몰랐네.” 그런데 배만 타지 않으면 안전할까요.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타고 다니는 ‘세월호’는 어떡하실 겁니까.
한 해 5000명 이상이 죽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교통사고로 말입니다. 충격적인 수치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고요? 매달 400명 이상 탑승한 세월호가 한 척씩 바닷속으로 ‘풍덩풍덩’ 침몰하고 있는 셈입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말입니다. 배를 안 탄다고, 비행기를 안 탄다고 피할 수 있는 위험도 아닙니다. 자동차는 우리가 매일 탑승하는 ‘세월호’니까요.
대한민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입니다. 정말이지 부끄럽네요. 교통사고 사망률은 바닥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2011년)는 OECD 회원국 평균이 6.8명입니다. 대한민국은 무려 10.5명입니다. 폴란드(11.0명) 다음으로 가장 높습니다. 자료를 제출한 OECD 33개 회원국 중 32위입니다. 그에 반해 1위인 영국은 3.1명에 불과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다들 말했습니다. “이젠 바꿔야 한다.”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 저는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출근길 운전 풍경이 바뀔 줄 알았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앞에서, 교차로 앞에서 앞다퉈 변할 줄 알았습니다. 서로 불편을 감수하며 매뉴얼을 지킬 줄 알았습니다. 그게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애도니까요.
어쩌면 저만의 착각일까요. 며칠 전 출근길 한강 다리에서 버스와 승용차가 차선 경쟁을 하다 결국 접촉사고가 나더군요. 오늘 점심에는 인도를 달리는 택배 오토바이가 행인들에게 경적을 마구 울려 댔습니다. 안타깝지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가 개조에는 힘이 필요합니다. 강물이 물길을 돌릴 때도, 역사가 흐름을 바꿀 때도 말입니다. 그 힘은 안에서 나올 수도, 밖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들 ‘국가 개조’에 동의했습니다. 그 절실함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강물의 흐름을 틀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위에 물어봤습니다. “5만원짜리 교통위반 스티커를 만약 유럽처럼 20만원, 30만원으로 올리면 받아들일 수 있겠나?”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더군요. 망설이는 사람도 있고, 싫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전국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날걸?” 하고 받아칩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만약 30만원짜리 교통위반 스티커를 받았다고 하자. 그럼 다시 위반할 것 같은가?” 열에 아홉은 “아니, 다시는 안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거둬들인 교통범칙금을 교통안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쓰면 어떻겠나?” 그건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각자 자신을 바꾸면 간단합니다. 새로 규제를 만들 필요도, 교통범칙금을 올릴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너무 적으면 어떡할까요. 안에서 나온 힘만으로 물길을 돌릴 수가 없다면 말입니다. 그럼 외부에서 힘을 끌어와야 합니다. 그게 뭘까요. 너와 나의 안전을 위한 강력한 제도와 규제입니다.
국가 개조는 맨입으로 되지 않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고, 국가만 바꾸자. 그런 방식으로는 국가가 바뀌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기 몫을 내놓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바꾸든지, 아니면 엄격한 매뉴얼과 규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에 따른 불편과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걸 정확하게 알고서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국가 개조를 바라는가.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중앙일보 06/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