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5일 목요일

'관피아'와 '래트 팩'

-먹이사슬 관피아 일시에 척결해야-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은 할리우드의 올스타 배우들이 출연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던 코미디·범죄물(2001년)이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앤디 가르시아, 줄리아 로버츠… 주연급인 이들 5명은 출연시간도 똑같이 배정받아 흔히 '앙상블 캐스팅'이라고도 불린다.

오션(클루니)은 갓 출소한 전과자.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세 곳을 동시에 터는 프로젝트를 짠다. 폭파 전문가, 컴퓨터 테크니션, 소매치기의 달인, 사기꾼 등 당대 최고의 꾼 11명이 억대의 현금을 강탈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치밀한 완성도와 다채로운 촬영 기법이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초호화 배역이 흥행몰이를 뒷받침해줬다.

영화 한 편 찍는데 어떻게 5명의 수퍼스타들이 뭉쳤을까. 알고 보니 이들은 '래트 팩(Rat Pack)'. 이른바 '쥐새끼 무리'다. 쥐는 가장 센 놈이 이끄는 대로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 원래는 뉴욕의 길거리 슬랭으로 '(불량한) 친구들'이란 뜻이다. 다섯 명의 배우들 가운데 우두머리는 클루니. 그가 한 번 '모여' 하자 우르르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래트 팩'은 또래 나이의 집단이어서 사적으로도 친분이 매우 두텁다. 예컨대 이들 중 누가 행사를 하게 되면 나머지 배우들이 예고없이 현장에 나타나 흥을 돋운다.

클루니가 로버츠에 20달러를 동봉해 보낸 편지는 그해 최고의 화두가 되다시피했다. "요새 영화 한 편에 (백만 달러씩)스무 장 받는다며?" 당시 인기 초절정이었던 여배우 로버츠의 개런티 2000만 달러에 빗댄 농담이다. 로버츠의 답장 또한 위트가 넘쳐났다. "우리가 남이가. 모처럼 뭉친다는데 출연료 신경쓰지마." 둘이 이처럼 죽이 척척 들어맞았으니 나머지 배우들의 섭외도 일사천리로 끝났다.

동물의 무리를 가리킬 때 사자(라이언) 만큼은 '프라이드(pride)'라고 부른다. 백수의 왕이라는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쥐, 늑대, 하이에나 등은 그냥 '팩'이다. 언론은 왜 스타급들의 무더기 출연을 '라이언 프라이드' 대신 '래트 팩'이라고 비아냥댔을까. '끼리끼리 다해먹어' 할리우드의 발전에 해악을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에서도 '래트 팩'은 늘 존재한다. 패거리 집단으로. 리처드 닉슨 시절 백악관 고위인사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일으켜 현직 대통령의 사임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 왔지 않은가.

한국서는 세월호 침몰을 계기로 '관피아'가 화를 키웠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관료들이 마피아처럼 똘똘 뭉쳐 퇴직 후에도 관련 업계에 취업, 먹이사슬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라면 아마 '관피아'를 '래트 팩'이라고 표현했을지 싶다. '프라이드'는커녕 한낱 '팩'의 무리로 패대기쳐진 관료사회. 워낙 뿌리가 깊어 척결이 쉽지 않다. 참사가 났는데도 청와대가 여전히 '행시 00기' '사시 00기' 출신의 비서관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놓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끼리'에 방점이 찍혀있는 기수 문화는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시절의 악습이다. 이 같은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리고 이번 사건에 책임있는 공직자들이 살인방조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 '관피아'는 얼마 후 또다시 고개를 들고 나올게 뻔하다. 쥐들은 단번에 없애버려야지 안 그러면 번식력이 강해 나중엔 온나라를 집어 삼킨다.

LA중앙일보 - 박용필/논설고문 (5/13/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