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사퇴했지만 사태의 파장은 길게 남을 것이다. 문창극 사건은 한국 사회의 여러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사건은 나라의 미래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세월호 희생자의 피 같은 호소는 국가 개조다. 과연 이런 상태로 그런 개조가 가능하겠는가. 사회는 노출된 실상을 직시하고, 잘못을 반성하며,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사건을 사회 개조를 위한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두 가지 점에서 한국 사회는 중대 결점을 드러냈다. 우선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후보자의 역사관을 정확히 알려면 교회 강연 전체를 보고 당사자의 해명을 듣는 게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치권·언론·시민단체·종교계의 상당수가 이런 노력을 외면했다. KBS 보도를 비롯해 ‘사실의 왜곡’이 만연한데 편의적 또는 의도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 사회는 이미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잘못된 보도에 의존하는 집단적 반(反)지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체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이를 반복했다. 진실의 기둥을 잡고 반듯하게 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논란을 처리하는 방식이 미숙하고 후진적이라는 것이다. 일제 식민 지배에 관한 문 후보의 언급은 분명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가치관·종교관·역사관에 따라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란과 그에게 총리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후보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하면 국회 청문회에서 검증하고 국회가 표결하라는 게 한국 사회가 정해 놓은 절차다. 헌법과 국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문창극과 안대희는 경우가 다르다. 안 후보자의 전관예우·고액 수임료는 역사관 같은 의식이 아니라 축재 같은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런 도덕적 하자가 총리 자격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는 데 사회적으로 별 이론이 없었다. 이는 후보자 자신도 결국 시인했다. 문 후보는 다르다. 역사관 논란은 말 그대로 논란이다. 이런 경우엔 법이 정한 ‘논란 처리방식’에 맡겨야 한다. 그것은 바로 청문회와 국회 표결인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내용 못지않게 절차도 중요한 것이어서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가 흔들린다. 당장 앞으로 또 다른 논란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논란이 두려워 사람들이 소신을 펴거나 공직을 맡는 걸 두려워하면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1차 책임은 대통령과 국회에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을 끌면서 공을 다른 이에게 넘겼다. 이는 ‘논란의 공세’ 앞에 지도자의 용기를 헌납한 것이다. 그는 원칙보다는 현실적인 부담을 중시했다. 이는 그동안 자신이 주장한 ‘원칙과 신뢰’에 어긋난다. 원칙의 동력을 잃고서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주도할 것인가. 새누리당은 오락가락하다 무기력하게 원칙을 포기하는 일에 합류했다. 새정치연합은 자신의 정권 시절엔 논란이 많은 장상·장대환 후보의 청문회를 열었다. 문 후보에 대해선 마녀사냥 같은 공세로 원칙을 망가뜨렸다.
문 후보의 마지막 처신도 아쉬움이 남는다. 사퇴 직전까지 그는 청문회라는 원칙을 옹호했다. 회견에서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랬다가 대통령을 돕는 길이라며 사퇴했다.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국가와 국민의 원칙을 사수했어야 했다.
이번 일은 소중한 열매도 남겼다. 사회의 기본을 중시하고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많은 지식인이 사태 후반부에 팔을 걷어붙이고 국회 청문회를 촉구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한국 사회가 합리를 보존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설] 중앙일보 2014-06-25